조조에게 배우는 사람관리법 7가지

 

 

[ 조조에게 배우는 사람관리법 7가지 ]



1. 훌륭한 목수는 좋은 연장을 쓴다
모든 싸움의 시작과 끝은 사람이다.
싸움을 일으키는 것도 사람이요,
그 싸움을 끝내는 것도 사람이다.
특히, 재능을 갖춘 인재가 옆에 있다면
어떤 싸움도 두렵지 않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승자의 위치에 오른 인물들은
하나같이 사람을 잘 부릴 줄 알았다.
 

천하대업에 뛰어든 조조는
        마땅한 인물이 없었던 탓에 스스로 계획하고 행동했다.

이후 역사연구를 통해 인재등용의 중요성을 명확하게

이해했으며 남다른 감각으로 인재를 발탁하고 중용했다

2. 세상이 곧 나의 스승이다
"품행이 바른 사람만이 실력을 갖춘 것은 아니다.
실력을 갖춘 사람만이 품행이 바른 것도 아니다.
인재를 등용하는데 그 사람의 도덕에만 얽매여
평가하지 말라." 는 명령을 내린 조조는,
"아침을 알리지 못한 닭도 지난 잘못을 메우고


다시 한 번 울고 싶은 법." 이라는 속담을 인용하면서

품행이 좋지 못한 것은 잘못이지만 그것에 얽매여서는 안 되며,

잘못을 만회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를 중시하는 조조의
태도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그의 곁으로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다.

3. 좋은 친구들을 사귀어라
무릇 성공은 내 손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좋지만,

남의 도움을 받는다면 더 빨리 성공을 거머쥘 수도 있다.

특히 능력이 탁월할 뿐만 아니라 나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을 정도로 충성하는 사람들을

거느렸다면 성공은 내 손안에 있는 셈이다.
조조와 함께 의병을 일으킨 사람들로는 하후돈, 하후연, 조인,

조홍, 조휴, 포신 등이 있다. 조조와는 혈연관계에 있거나

같은 고향 출신인 이들은 조조가 처음 세력을

잡을 때 든든한 기반이 되어주었다.

4. 귀중한 것일수록 얻기 어렵다
1천 명의 병사는 얻기 쉽지만,
뛰어난 장수 한 명을 거두기란 쉽지 않다는 말이 있다.

혼란한 정국을 수습하고 천하를 통일하기 위해서는

많은 인재들의 활약이 중요했지만, 큰 뜻과 남다른

재능을 가진 인재들은 깊은 곳에 숨어 자신의 가치를

알아줄 주군을 기다렸다.
조조는 자신을 도와 천하를 제패할
이런 인재들을 찾는데 주력했고,
진심으로 그들을 대했다.

조정에 불만이 있어 은둔생활을 하고 있던 순욱은

조조가 지혜롭고 용맹하며 인재를 중용한다는 말을 듣고

조조에게 몸을 의탁하려고 일찍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조가 어떻게 나올지 몰라 일부러 격문을 써서

조조의 반응을 떠보자, 조조는 곧바로 조인을 보내

순욱을 모셔오게 했다. 그리고 일부러 문을 닫아걸고

나오지 않는 순욱에게 화가 난 조인이 시건방진

순욱을 죽여야 한다



고 조조에게 건의하자, 

 조조는 오히려 조인을 꾸짖었다.
그날 이후로 조조는 매서운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일같이 순욱을 찾아갔지만 그를 만날 수 없었다.

나중에는 순욱이 다리에 병이 있다는 핑계로 조조의

청을 사양하자, 몸소 좋은 말을 끌고 와 순욱을 부축해서

앉힌 다음 품에 안고 경복전으로 들어갔다.
모든 일에는 사람이 우선이다.
성공에도 사람이 우선이다.
사람을 경영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존중해야 한다.

5. 최고의 헤드헌터가 되라
능력이 비범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성공으로 이끄는 나침반을 얻는 것과 같다.
조조는 특유의 카리스마로 천하의 인재들을 끌어들였다.
초야에 묻혀 있다가 조조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등용된

인재들도 많았고 자진해서 찾아온 인재들도 많았다.

심지어는 억지로라도 자기 편으로 끌어들였는데,

제갈량과 견줄만한 사마의는 체포하라는 칙서까지

내려 벼슬자리에 앉히기도 했다.

6.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
큰 일을 하려면 남보다 지혜로워야 한다.
지혜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미래에 대한 고민과 연구를 통해 얻는 것이며,
두번째는 현명한 사람들에게서 지혜를 구하는 것이다.
조조가 천하대업을 실현할 수 있었던 데에는

그 자신의 비범한 재능 외에 당대 최고의 '싱크탱크'의

도움이 있었다. 정치적으로 조조의 싱크탱크는 숙적들을

정치적으로 제거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조조가 헌제를 허도로 모셔와 천자를 옆에 끼고

제후를 호령할 수 있었던 것은 책사들의 지략 덕분이다.

7. 틀 밖으로 나가라


사람은 누구나 잘났고 못났음은 종이 한 장 차이다.

그러나 그 사람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바라는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조조가 거느리던 책사들은 제갈량처럼 만사에

능하지는 않았지만 서로 머리를 맞대고 노력한

결과는 결코 그에 뒤처지지 않았다.
천하통일의 대업을 향해 조조가 내디딘

한 발 한 발은

조조뿐 아니라 책사들의 발자국이기도 했다.

정치적 포부가 남달리 컸던 조조는 인재들을 모아

천하를 거머쥐고자 했는데, 그 욕심이 얼마나 컸던지

자신의 라이벌인 유비와 손권마저 탐냈다고 한다.
-옮겨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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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조에게 배우는 사람관리법 7가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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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제의 지하궁전  - 진시황릉의 병마용갱(兵馬俑坑)
‘세계 10대 기적의 하나’로 꼽히는 진시황릉(秦始皇陵)은 중국 최초의 황제인 진 시황제의 묘지로
 중원을 통일한 진나라의 도읍지인 함양(咸陽)땅인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에서 30km 떨어진
동현의 원산원(驪山園)에 자리하고 있다.

능묘 건설만 기원전 246년에서 208년까지 39년 동안 펼쳐진 이 황릉은 최대 70여 만 명의 인력이
동원된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로 현재는 여산이라 불려지는 높이 76m의 야산에 무덤이 안치되어
있으리라 짐작만 될뿐 완전한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을 통일하고 만리장성 건설에 착수한 진(秦)나라 시황제(始皇帝)의 무덤에 관한 문헌인 사마천의

 사기 진시황본기편에 의하면 황릉은 지하궁전으로 지어졌으며 내와 강을 이룰 정도로 엄청난

양의 수은을 이용하여 무덤을 외부의 침입자로부터 보호되게끔 시설되었다고 쓰여져있다. 

 

 

그 동안 추측만 했을 뿐 진시황릉은 베일에 싸여 있었으나 우물을 파던 농부의 삽끝에서 우연히
'세기의 발견' 이라 불리는 진시황릉의 병마용갱(兵馬俑坑)이 1974년 발견됨으로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다. 진시황릉원 동쪽 담에서 1km 떨어진 곳에 진시황의 사후를 지키는 친위군단인
 병마도용을 수장한  갱도가 긴 어둠의 세월을 걷어내고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이다.

 

 

곧 바로 발굴이 시작되어 현재 총면적 25,380m2에 달하는 4개의 갱이 발굴되었다.

 1호갱의 규모를 보면 길이 210m, 너비 60m, 깊이 4.5~6.5m의 총면적 12,000m2로 본래

이 갱 위에는 회랑식 건축물이 있었으나 불타 없어졌다고 한다.

 

 

병마용갱 전체 도용은 약 6,000개로 추정되며, 도용의 크기는 1.75~1.86m, 도마용은 높이 1.5m,

 길이 2m의 실물대이며, 갑옷을 입고 무장한 무사의 표정들은 마치 살아 있는 듯하고 얼굴이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2호갱은 부분적으로 발굴되어 다량의 목제 전차와 이를 끄는 마용 356건,

기병용 116건, 안마 116건, 보병용 562건이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완전 발굴된 520m2의 3호갱은 지휘부로 추정되는데, 장군의 것으로 보이는 채색된
전차 1량과 갑옷 입은 보병용 64건, 마용 4건이 출토되었다. 이 밖에도 진시황릉
서북측에서 동마용과 동용이 딸린 대형 동전차가 1대 발견되었다.

 


'세계의 8대 경이' 중의 하나로 꼽히기도 하는 이 병마용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훌륭한 예술품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진시황 친위군단의 강력한 위용은 물론,
당시의 군사편제 ·갑옷 ·무기 등의 연구에도 구체적인 자료를 제공하고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정작 시황제의 무덤은 아직 발굴되지 않고 있으나 아마도 4면으로 된 피라미드 형태의 
둔덕 바로 아래 지하궁전에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고고학자들의 연구결과를 보면 진시황릉의 구조가 하나의 거대한

지하도시로 전체 면적이 60여 만평에 달하고, 지하 4층의 거대한 궁전으로 되어 있으며,

묘역 안팎에는 내성(內城)과 외성(外城)을 쌓아 당시 도읍지인 장안(長安)과 같이 

외성곽 길이만도 12㎞에 달한다는 발표다.

 한마디로 진시황릉은 '거대한 묘역도시'인 셈이다.

 

 

일반 황릉과는 달리 황후와 합장하지 않은 것도 특이하다. 황후를 합장하지 않고 진시황 단독 묘를 
것은 당시 ‘황제권력은 한없이 높다’는 ‘황권지고무상관(皇權至高無上觀)’을 
반영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런 진시황릉에 대한 발굴작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발굴기술로는 원형을 훼손할

 가능성이 크다는 중국 정부의 판단 때문에 대대적인 발굴은 미뤄지는 형편이다. 완전한 발굴로

그 실체를 밝히기 까지는 앞으로도 몇 세대의 세월이 필요하다는 고고학자들의 이야기다.

 

 

절대권력자로서 불로장생을 꿈꾸었던 시황제는 죽음을 막을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 앞에서 내세(來世)
의 영생을 믿으며 ‘삶과 죽음은 동일하다’는 ‘생사동일관(生死同一觀)’하에 천년, 만년, 영원한 제국을
이루고자 한 진시황! 사후 210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무한권력자의 생사마저 초월코자 했던
그의 힘이 그대로 느껴지는 진시황릉이다.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모셔온 글

 


인생불만백 상회천세우




출처 : 演好마을
글쓴이 : 한미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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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나물먹고 물마시고
글쓴이 : null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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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 를 읽지 않고는 책을 읽었다는 말 을 하지마라"
    이런 말 이 있습니다. 삼국지는 [삼국지] 와 [삼국지연의] 두 가지가 있는데
    삼국지는 역사의 기록이고, 삼국지연의는 소설입니다.
    백과사전에 있는 설명은 이렇습니다. [삼국지](三國志)는 서진(西晉)의 진수가 쓴
    중국 삼국시대의 사찬(私撰) 역사서이다. 후한 말기부터 서진 초까지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사기, 한서, 후한서 와 함께 중국 전사사(前四史)로 불리며 이십사사(二十四史) 중의 하나이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는 서기 184년 황건의 난부터 서기 280년까지 중국 대륙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집필한 중국의 대표적 고전 소설로, 명나라 때 나관중이 쓴 책이다.
    서진(西晉)의 진수가 집필한 "삼국지"와 배송지의 삼국지주(三國志註)에 수록된 야사와 잡기를 근거로, 전상삼국지평화(全相三國志平話)의 줄거리를 취하여 쓴 작품(소설)이다. 2010년에 방영된 중국의 TV드라마, 삼국지 입니다. 총 95부작으로 되어 있습니다. 저장해 두고 보세요.

           삼국지 01부

           삼국지 95부

 


출처 : 황혼의 멋진 삶
글쓴이 : 철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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