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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의 좋은글 모음   (0) 2013.05.29
법정스님 유언  (0) 2013.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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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의 좋은글 모음
 
법정스님의 좋은글 모음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마음을 쓰게 된다. 따라서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뜻이다. - 무소유 중에서 - 나 자신의 인간 가치를 결정짓는 것은 내가 얼마나 높은 사회적 지위나 명예 또는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나 자신의 영혼과 얼마나 일치되어 있는가이다. - 홀로 사는 즐거움 에서 -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이 어디 있는가. 모두가 한때일 뿐, 그러나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아름다움이다. - 버리고 떠나기 에서- 내 소망은 단순하게 사는 일이다. 그리고 평범하게 사는 일이다. 느낌과 의지대로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그 누구도,내 삶을 대신해서 살아줄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나 답게 살고 싶다 - 오두막 편지 에서 - 빈마음, 그것을 무심이라고 한다. 빈마음이 곧 우리들의 본 마음이다. 무엇인가 채워져 있으면 본 마음이 아니다. 텅 비우고 있어야 거기 울림이 있다. 울림이 있어야 삶이 신선하고 활기 있 는 것이다. - 물소리 바람소리 에서- 사람은 본질적으로 홀로일 수밖에 없는 존재다. 홀로 사는 사람들은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살려고 한다. 홀로 있다는 것은 물들지 않고 순진무구하고 자유롭고 전체적이고 부서지지 않음을 뜻한다. - 홀로 사는 즐거움 에서- 우리 곁에서 꽃이 피어난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생명의 신비인가. 곱고 향기로운 우주가 문을 열고 있는 것이다. 잠잠하던 숲에서 새들이 맑은 목청으로 노래하는 것은 우리들 삶에 물기를 보태주는 가락이다. - 산방한담 에서 - 행복은 결코 많고 큰 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작은 것을 가지고도 고마워하고 만족할 줄 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여백과 공간의 아름다움은 단순함과 간소함에 있다. - 홀로 사는 즐거움 에서 - 가슴은 존재의 핵심이고 중심이다. 가슴 없이는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다. 생명의 신비인 사람도,다정한 눈빛도, 정겨운 음성도 가슴에서 싹이 튼다. 가슴은 이렇듯 생명의 중심이다. - 오두막 편지에서- 나는 누구인가.스스로 물으라. 자신의 속얼굴이 드러나 보일 때까지 묻고 묻고 물어야 한다. 건성으로 묻지말고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귀 속의 귀에 대고 간절하게 물어야 한다. 해답은 그 물음 속에 있다. - 산에는 꽃이 피네 에서 -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전 존재를 기울여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이 다음에는 더욱 많은 이웃들을 사랑할 수 있다. 다음 순간은 지금 이 순간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지금이 바로 그때이지 시절이 달로 있는 것이 아니다. - 봄 여름 가을 겨울 에서 -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 산에는 꽃이피네 에서 - 버리고 비우는 일은 결코 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버리고 비우지 않고는 새것이 들어설 수 없다. 공간이나 여백은 그저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과 여백이 본질과 실상을 떠받쳐주고 있다. - 버리고 떠나기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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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 유언  (0) 2013.05.29

법정 스님의 유언


죽게 되면 말없이 죽을 것이지 무슨 구구한 이유가 따를 것인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지레 죽는 사람이라면

의견서(유서)라도 첨부되어야겠지만,


제 명대로 살 만치 살다가 가는 사람에겐
그 변명이 소용될 것 같지 않다.


그리고 말이란 늘 오해를 동반하게 마련이므로,
유서에도 오해를 불러 일으킬 소지가 있다.



그런데 죽음은 어느 때 나를 찾아올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 많은 교통사고와 가스 중독과 그리고
원한의 눈길이 전생의 갚음으로 나를 쏠는지 알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죽음 쪽에서 보면
한 걸음 한 걸음 죽어 오고 있다는 것임을 상기할 때,


사는 일은 곧 죽는 일이며, 생과 사는 결코 절연된 것이 아니다.


죽음이 언제 어디서 나를 부를지라도
"네" 하고 선뜻 털고 일어설 준비만은 되어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유서는 남기는 글이기보다
지금 살고 있는 '생의 백서(白書)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육신으로서는 일회적일 수밖에 없는 죽음을 당해서도


실제로는 유서 같은 걸 남길 만한 처지가 못 되기 때문에
편집자의 청탁에 산책하는 기분으로 따라 나선 것이다.



누구를 부를까? 유서에는 흔히 누구를 부르던데?


아무도 없다. 철저하게 혼자였으니까.


설사 지금껏 귀의해 섬겨온
부처님이라 할지라도 그는 결국 타인이다.

이 세상에 올 때도 혼자서 왔고 갈 때도 나 혼자서 갈 수밖에 없다.


내 그림자만을 이끌고 휘적휘적 삶의 지평을 걸어왔고
또 그렇게 걸어갈 테니 부를 만한 이웃이 있을 리 없다.



물론 오늘까지도 나는 멀고 가까운 이웃들과 서로 왕래를 하며

살고 있다. 또한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생명 자체는 어디까지나
개별적인 것이므로 인간은 저마다 혼자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보랏빛 노을 같은 감상이 아니라
인간의 당당하고 본질적인 실존이다.



고뇌를 뚫고 환희의 세계로 지향한
베토벤의 음성을 빌리지 않더라도,


나는 인간의 선의지善意志 이것밖에는
인간의 우월성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온갖 모순과 갈등과 증오와 살육으로 뒤범벅이 된 이 어두운 인간의

촌락에 오늘도 해가 떠오른 것은 오로지 그 선의지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세상을 하직하기 전에 내가 할 일은
먼저 인간의 선의지를 저버린 일에 대한 참회다.


이웃의 선의지에 대해서 내가 어리석은 탓으로
저지른 허물을 참회하지 않고는 눈을 감을 수 없는 것이다.


때로는 큰 허물보다 작은 허물이 우리를 괴롭힐 때가 있다.


허물이란 너무 크면 그 무게에 짓눌려
참괴(慙愧)의 눈이 멀고 작을 때에만 기억이 남는 것인가.


어쩌면 그것은 지독한 위선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평생을 두고 그 한 가지 일로 해서
돌이킬 수 없는 후회와 자책을 느끼고 있다.


그것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면서
문득문득 나를 부끄럽고 괴롭게 채찍질했다.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 동무들과 어울려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서였다. 엿장수가 엿판을 내려 놓고 땀을 들이고 있었다.


그 엿장수는 교문 밖에서도 가끔 볼 수 있으리만큼
낯익은 사람인데 그는 팔 하나가 없고 말을 더듬는 불구자였다.


대여섯된 우리는 그 엿장수를 둘러싸고
엿가락을 고르는 체하면서 적지 않은 엿을 슬쩍슬쩍 빼돌렸다.


돈은 서너 가락치밖에 내지 않았다.
불구인 그는 그런 영문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 일이 돌이킬 수 없는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가 만약 넉살 좋고 건장한 엿장수였더라면
나는 벌써 그런 일을 잊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장애자라는 점에서
지워지지 않은 채 자책은 더욱 생생하다.



내가 이 세상에 살면서 지은 허물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 중에는 용서받기 어려운 허물도 적지 않을 것이다
.


그런데 무슨 까닭인지 그때 저지른
그 허물이 줄곧 그림자처럼 나를 쫓고 있다.


이 다음 세상에서는 다시는 더 이런 후회스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빌며 참회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살아 생전에 받았던 배신이나 모함도 그때 한 인간의

순박한 선의지를 저버린 과보라 생각하면 능히 견딜 만한 것이다.


"날카로운 면도날은 밟고 가기 어렵나니 현자가 이르기를 구원을 얻는 길 또한

이같이 어려우니라. <우파니샤드>의 이 말씀을 충분히 이해할 것 같다.



내가 죽을 때는 가진 것이 없으므로
무엇을 누구에게 전한다는 번거로운 일도 없을 것이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은 우리들 사문의 소유 관념이다.


그래도 혹시 평생에 즐겨 읽던 책이 내 머리맡에 몇 권 남는다면,


아침 저녁으로 "신문이오" 하고 나를 찾아주는 그 꼬마에게 주고 싶다.



장례식이나 제사 같은 것은 아예 소용없는 일,


요즘은 중들이 세상 사람들보다 한 술 더 떠 거창한 장례를 치르고

있는데, 그토록 번거롭고 부질없는 검은 의식이


만약 내 이름으로 행해진다면
나를 위로하기는커녕 몹시 화나게 할 것이다.


평소의 식탁처럼 나는 간단 명료한 것을 따르고자 한다.


내게 무덤이라도 있게 된다면 그 차가운 빗돌 대신


어느 여름날 아침에 좋아하게 된 양귀비꽃이나 모란을 심어 달라고

하겠지만, 무덤도 없을 테니 그런 수고는 끼치지 않을 것이다.


생명의 기능이 나가버린 육신은 보기 흉하고 이웃에게 짐이 될

것이므로 조금도 지체할 것 없이 없애주었으면 고맙겠다.


그것은 내가 벗어버린 헌옷이니까, 물론 옮기기 편리하고 이웃에게

방해되지 않을 곳이라면 아무데서나 다비(茶毘 화장)해도 무방하다.


사리 같은 걸 남겨 이웃을 귀찮게 하는 일을 나는 절대로 하고 싶지 않다. 육신을 버린 후에는 훨훨 날아서 가고 싶은 곳이 있다. 어린 왕자가 사는 별나라 같은 곳이다. 의자의 위치만 옮겨 놓으면 하루에도 해지는

광경을 몇 번이고 볼 수 있다는 아주 조그만 그런 별나라,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봐야 한다는 것을 안 왕자는 지금쯤 장미와 사이좋게

지내고 있을까.그런 나라에는 귀찮은 입국사증 같은 것도 필요 없을

것이므로 한번 가보고 싶다. 그리고 내생에도 다시 한반도에 태어

나고 싶다.누가 뭐라 한대도 모국어에 대한 애착 때문에 나는 이

나라를 버릴 수 없다. 다시 출가 수행자가 되어 금생에

못 다한 일들을 하고 싶다.

법정(法頂, 1932년 10월 8일~2010년 3월 11일)은 대한민국의 불교 승려, 수필가이다. 무소유의 정신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많은 저서를 통해 자신의 철학을 널리 알려왔다.1954년에 승려 효봉의 제자로 출가하였고 1970년대 후반에 송광사 뒷산에 손수 불일암을 지어 살았다.2010년 3월 11일에 서울 성북구 성북2동에 위치한 길상사에서 폐암으로 인해 향년 78세로 사망(입적)하였다.
생애
1932년 10월 8일에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에는 목포시에서 지냈다. 목포상업고등학교(현 전남제일고등학교)를 거쳐 전남대학교 상대에 진학했다. 그는 당시에 일어난 한국 전쟁을 겪으며 인간에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었고, 대학교 3학년때인 1954년에 출가를

결심하게 된다. 그리고 오대산으로 떠나기로 했던 그는 눈길로 인해

차가 막혀 당시 서울 안국동에 있던 효봉 스님을 만나게 된다. 효봉

스님과 대화를 나눈 그는 그 자리에서 머리를 깎고 행자 생활을

시작했다.그리고 그는 바로 다음 해에 사미계를 받은 후 지리산

쌍계사에서 정진했다. 1959년 3월에는 양산 통도사에서 자운

율사를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으며, 1959년 4월에는 해인사

전문강원에서 명봉 스님을 강주로 대교과를 졸업했다.
종교간 화합
1997년 12월 14일에 서울 성북동의 길상사 개원법회에 김수환 추기경이 참석하여 축하해 주자, 이에 대한 답례로 1998년 2월 24일에 명동 성당을 방문하여 특별 강연을 가져 종교간의 화합을 보여주었다.


대표 저서
무소유, 영혼의 모음, 서 있는 사람들, 말과 침묵, 산방한담, 텅 빈 충만, 물 소리 바람 소리, 버리고 떠나기, 인도기행,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그물에 걸지 않는 바람처럼, 산에는 꽃이 피네, 오두막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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