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와 제사문제 Q&A



Q :시어머니와 종교가 다른데, 제사 대신 추모예배 드릴 수 있나요
 
A :“조상 기리는 마음은 동일” 겸손하게 설득하세요
추석연휴입니다. 
오랜만에 가족과 친지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화목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하지만 차례나 성묘와 같은 제례 문제로 훈훈한 명절 분위기를 
깰까 노심초사하는 크리스천이 적지 않다. 
가족·친지 간 종교가 다른 경우 명절 예식을 전통으로 볼지, 
종교적으로 해석할지를 놓고 분란이 생길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와 제사 문제에 대한 궁금증을 일문일답으로 풀어본다. 

Q :기독교인은 차례를 드리면 안 되나 

A : “기독교인이 차례를 드리지 않는다는 것은 편견이다. 
기독교는 기독교적 예식으로 차례를 갈음한다. 
교단이나 교회에 따라 ‘추모예배’ ‘추모예식’으로 부른다. 
가급적 ‘추도’란 용어는 자제하고 ‘추모’를 사용한다. 
추도에는 슬피 운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예배란 용어가 널리 사용되긴 하나 교단에 따라 
‘예식’이란 단어를 권장하기도 한다.” 

Q :그렇다면 차례와 추모예배(예식)의 차이는 무엇인가 

A : “‘예배 대상’이 가장 큰 차이다. 
유교 사상을 바탕으로 한 차례는 조상신이
 예배와 숭배의 대상이 된다. 
제사는 후손들이 제사상을 차리고 절을 올려 
돌아가신 조상에게 바치는 제의적 형식을 가지고 있다. 
반면 추모예배(예식)는 조상을 추모할 뿐 
예배의 대상으로 보진 않는다. 
기독교에서 고인의 영혼은 감사의 대상이지 
숭배의 대상은 아니다.” 

Q : 제사를 왜 전통문화로 볼 수 없나 

A : “가톨릭은 1939년 교황 파이우스 12세에 의해 
조상 제사가 허용된 이후, 
전통적 제사문화를 수용하는 입장이다. 
반면 개신교는 130여년 전 선교사들의 입장 
그대로 우상숭배로 여기는 관념적 뿌리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시대 상황이 바뀌면서 제사를 대체할 수 있는 
기독교적 예식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기독교적 추모예식은 
비교적 우리 전통문화가 수용된 형태로 드려지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보다 더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기독교적 추모예식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Q : 왜 절을 하면 안 되나 

A :“제사상에 신위를 모시고 절을 하는 것은, 
조상을 신으로 숭배하는 종교적 성격을 내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축문도 마찬가지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제사는 전통이 아닌 
우상숭배며 십계명 1∼2조에 위배되는 것이다. 
또 죽은 자와 산 자의 대화는 불가능하다는 점(눅 16장 19∼21절)을 
근거로 제사가 종교적 성격이 있다고 보기도 한다. 
한편 성경을 떠나 기독교 전통과 맞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제사 의전과 기독교 예전이 달라 
관습적으로 절을 안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Q : 제사 음식을 먹어도 될까 

A : “제사상에 차려진 음식이라도 
실제 조상들이 찾아와 먹지는 않는다. 
결국 산 사람이 음식을 만들고 먹는 셈이다. 
고린도전서 10장 25∼28절을 보면 바울은, 
‘우상의 제물이나 음식도 하나님의 것이라고 믿고 
먹으라고 했고, 거리끼는 마음이 있으면 먹지 말라’고 했다. 
모든 음식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마련한 것이다.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
(고전 10:31)는 말씀처럼 제사 음식 문제는 자유롭게 선택하자.” 

Q : 가족 간 종교가 달라 제사 문제로 가정불화가 생길까 걱정인데… 

A : “제사를 드리는 가정이라면 절을 해야 할 경우가 생긴다. 
이때 “저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조상님께 절하기보다는 
추모하며 감사의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라고 겸손히 말하고 
기도해 보자. 
예배(예식)나 성묘 예식을 드리는 가정이라면 
한 해 동안 넘치는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내용으로 
예배를 드리면 된다. 
절 대신 기도를, 제사 대신 예배를 드리지만 
웃어른을 공경한다는 태도가 중요하다.” 

Q : 명절 때 제례의식 대신 추모예배(예식)를 드리고 싶은데... 

A :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족·친지와 돈독한 사이를 유지하는 것이다. 
비신자에게 예배를 강요하는 것은 효과적이지도 않으며 
자칫 잘못하면 가족 간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 
자연스럽게 대화하며 기독교식 예식이 갖는 
의미와 목적을 설명해야 한다. 
방법과 예배 대상이 다를 뿐 조상을 기리고 사모하는 것은 
동일하다는 점을 합리적으로 설득하는 게 중요하다.” 

양민경 기자 

 
출처 : 바람에 띄운 그리움
글쓴이 : 수정 원글보기
메모 :

●추도(追悼)'와 '추모(追慕)'

'

추도#追悼#'와 '추모#追慕#'라는 말은

 

장례 절차가 끝나고 일정한 시간이

 

지난 뒤에 사용하는 말이다.

 

'추(追)'자는

 

옛 일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뜻이다.

 

장례 중이나 상중에는

 

'애도' 또는 '조문', '조위'라는 말을 써야 한다.

 

그리고

 

'추모#追慕#'라는 용어는

 

국가를 위해 헌신했거나 공을 세웠다거나

 

인품과 덕성이

 

존경스러울 때만 쓰는 말이다.

 

세월호 희생자를

 

애도하는 행렬이 이어졌을 때

 

방송이나 신문에서

 

'추모'한다는 말을 쓴 것은

 

잘 못 쓴 말이다.

 

-정구복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조선 오피니언 2014.5.23-

 

추도 예배 순서

 

부모님 추도예배 순서와 설교 [스크랩]

 

 

 

 

개식사 ---(통235)200,(통293)480.(통433)383. (통434)384. (통545)493, (통539)488. (통541)489. (통544)

 

492,-----집례자

 

예배의부름---시90:1-10-----------------------맡은이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슬픔과 절망

 

의 어두운 세상속에서도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저희 사

 

랑하는 부모님을 하나님의 나라로 불러 가신 날이오라 이 날을 기념하며 이곳에 모여 주님께 예배하오니

 

긍휼히 여기시고 주님의 위로와 하늘의 평강으로 채워 주시옵소서.

 

사랑의 하나님, 그 동안 저희들의 모든 허물과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육신의 부모님께, 형제들에게 잘못

 

한 것이 많았음을 고백하오니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로 하여금 세상의 모든 어려운 일과 현재의 형

 

편만 생각하여 슬퍼하지 말게 하시고, 하늘의 영원한 소망을 생각하며 평안한 마음을 갖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모든 가족이 주 앞에 돌아와서 믿음을 갖게 하시고, 굳센 신앙으로 살게 하옵소서. 이 시간 모든 절차

 

를 성령께서 친히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을 기도드립니다. 아멘

 

 

 

신앙고백------다같이

 

찬 송-------(통94) 96, )----------다같이

 

성경봉독---잠언 14;12/16:25---------맡은이

 

말 씀----어디로가고 있습니까?------- 맡은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족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 땅에서 먼저 사시다가 하

 

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신 부모님을 추모하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뿌리가 보이는

 

식물의 근원이 되듯이 오늘 우리가 있는 것은 이 세상을 먼저 살다 가신 선조들 , 부모님들이 계셨기 때문입

 

니다. 어려운 역경과 환경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살아가셨던 부모님들의 정신과 뜻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족들의 핏속에 흘러 오늘의 우리가 있게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

 

리는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류

 

의 조상 아담에게 말씀하시길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찌니라” 하셨습니다. 한번 죽어야 하는 것은 하

 

나님이 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성경은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

 

하였습니다. 아침에 호수를 보면 자욱하게 안개가 덮여 있습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지요. 그러나 태양이

 

떠오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집니다. 우리 인생이 바로 이런 안개와 같다는 것입니다. 당장의 물질에

 

눈이 어두워 장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단 몇 달도 내다보지 못하여 죽어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는 현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

 

 

4:14)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진짜 중요한 문제는 우

 

 

리가 죽은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고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을 이 땅에서 준비

 

 

하는 자가 복된 자입니다. 신문광고나 텔레비전 광고를 보면, “미래를 대비하라” “노후를 준비하라”는 광고

 

 

가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노후는 준비하면서 죽음은 준비하지 않는 다는 사실입니다. well-being’(잘

 

 

살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well-deaing’(잘 죽기)입니다. 죽음을 준비한 사람은 절대로 불안하지 않습니다.

 

 

죽음을 준비한 사람은 어떤 상황이 와도 당당합니다. 생명이 있다는 것은 죽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죽음은

 

 

정해진 이치입니다. "우리는 필경 죽으리니 땅에 쏟아진 물을 다시 모으지 못함 같을 것이오나"(삼하

 

 

14:14).

 

 

그러나 죽음은 끝이 아니기에 준비해야 합니다. 인생은 선택과 준비의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선

 

 

택하느냐에 따라서 현재가 달라집니다. 어떻게 준비를 하느냐에 따라서 미래가 바뀝니다.

 

 

 

 

 

▶이태리 밀라노 대성당에는 문이 셋이 있는데, 첫째 문은 아치로 되어 있는데 “모든 즐거움은 잠깐이다”라

 

 

는 글이 새겨져 있고, 둘째 문은 십자가형으로 되어 있는데 “모든 고통도 잠깐이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고,

 

 

셋째 문에는 “오직 중요한 것은 영원한 것이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참으로 인생을 가장 짧게 정리한 글이라 생각합니다. 즐거움도 잠깐, 고통도 잠깐인데 중요한 것은 영원한

 

 

것입니다. 인간은 영원한 존재이므로 영생을 얻는 것과 영원한 천국을 준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고

 

 

또 가장 시급한 문제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일의 영원한 천국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바로 하늘에 소

 

 

망을 갖는 것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

 

 

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한복음 14:1-3)” 이런 공

 

 

허와 절망의 순간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하늘 소망을 주시며 용기와 격려를 해 주십니다 .

 

 

 

 

 

 

첫째로 근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한치 앞을 모르는 우리 현대인들은 늘 근심과

 

 

염려 불안에 휩싸여 삽니다. 그러나 근심으로 변화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심신을 약하게 만

 

 

듭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헛된 염려와 근심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고 있습니까? 특히 인류

 

 

의 가장 큰 근심은 바로 죽음에 대한 문제입니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들어온 이 죽음은 창조 이래

 

 

인간을 괴롭혀 온 가장 큰 공포입니다. 헤어 나올 수없는 죽음의 두려움 속에서 우리는 때때로 분주한 일과

 

 

방종한 쾌락으로 죽음을 잊어보려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근원적 해결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죽음도 두려워하거나 근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인간의 생명과 죽음까지도 주관하시

 

 

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시려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

 

 

기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영생의 소망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믿고 담대한

 

 

자신감으로 세상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예수님을 신뢰하라고 하십니다. - 두려움의 반대말이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우리는 두려움

 

 

과 근심에 빠지게 됩니다. 예수님은 염려하는 제자들에게“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말씀하십니다. 사랑의 주님을,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는 그 좋으신 예수님을 끝

 

 

까지 신뢰하라고 하십니다. 그 믿음이 우리의 두려움을 사라지게 하고 기쁨과 평안이 넘치는 삶으로 인도

 

 

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살아 호흡하고 있을 때에도 또 죽음을 맞이할 때에도, 죽음 이후에도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지켜 동행해 주십니다. 이 사실을 믿고 신뢰할 때 우리의 삶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

 

 

니다. 기적이 창조되고, 운명이 변화됩니다. 세상을 이기고 변화시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만이

 

 

우리를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으로 인도해 줍니다. 우리 모두 주님을 신뢰함으로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는 삶

 

 

을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셋째로, 하늘 소망을 가지라고 하십니다. - 죽음 앞에 너무나 초라하고 연약한 인간의 모습속에서 우리

 

 

는 때때로 공허해지고 무력해 집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도 담대합니다. 왜 그렇습니

 

 

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도에게 죽음의 권세를 넘어서는 하늘나라의 소망을 주셨기 때문입

 

 

니다. 이 영생의 소망을 주시기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셨습니다.

 

 

또한 죽음을 이기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모든 믿는 사람들의 부활의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이로

 

 

인해 성도는 죽음 앞에서도 담대할 수 있고 기쁨의 찬양을 드리며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죽음은 끝이 아

 

 

니다. 영원한 생명을 향한 새로운 출발이다. 너희는 먼 훗날 고통과 눈물이 없고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하나

 

 

님의 나라에서 나와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라는 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오늘 예수님

 

 

께서 하시는 이 말씀을 믿고 우리 가족모두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번 추도예배를 통하여 우리 부모님들의 귀한 정신을 잘 되새기고 앞으로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하겠습니

 

 

다. 또한 예수님을 신뢰함으로 그동안 우리를 괴롭혔던 근심과 걱정과 불안을 떨쳐버리시길 바랍니다. 더

 

 

나아가 하늘 소망을 가지고 승리의 삶을 살아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주신 말씀 붙잡고 순종하는 우리 모든

 

 

가족들 위에 하나님의 평강이 언제나 함께 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기도 ------------------ 맡은이

 

찬송 -- (통542)490,------맡은이

 

 

추모순서

 

①고인의 약력보고 ②추모사 ③유언이나 유서나 유물소개

 

시조는 덕명(德明)1世 로부터-24世 심우(心佑)할아버지께서 구만리로 낙향하시여 구호손(九湖孫)으로 25

 

世 성(0性)26世 석(錫0)27世 영(0永)28世 병(秉0)29世 용(0容)30世 재(栽0)31世 호(0鎬)32世 순(淳0) 자손이

 

다,

 

 

할아버지는 000字로 88세손이며 음력 0000년 00월 00일(양력 0000년0월 0일)0세에 소천하셨다. 할머니는 0

 

字 0字 0字로 000씨 시며 음력0000년 0월0일(양력 0000년0월00일)00세에 소천 하셨다.

 

살아생전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에는00000을 경영하시다가 연세가 많으신 뒤부터는 000000000를 운영 하셨

 

으며 예수님 믿고 세례를 받으신 뒤 소천하셨으며, 현재 00000000 0000 묘지가 있다. 할머니는 아빠 형제들

 

인00남매를 훌륭하게 기르시고 지병(000)으로 조금 일찍(00세)이 소천하셨는데 병상에서 예수님을 영접하

 

셨고 묘지는 고향 마을인 00000000리 선산에 있다.

 

** 잠깐 눈을 감고 조상님들에 대해 감사의 생각을 하도록 합니다.

 

 

 

찬송 --------(통543)491 -------맡은이

 

축도 ------------------------맡은이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들은 눈앞에 보이는 것만 보고 미래를 볼 줄 모르는 어리석은 인간입니다. 그러나 영

 

 

원한 나라가 있음을 믿게 하여 주시고,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영원한 소망을 두고 항상

 

 

이 세상 속에서 어떤 어려움을 만나도 극복할 수 있는 믿음의 용기를 주시옵소서. 우리들이 흩어져 살더라

 

 

도 믿음으로 하나되게 하시고, 주의 은혜와 축복 속에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아멘.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

 

 

리스도의 크신 은혜와 하나님아버지의 지극하신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교통하심이---------------

 

 

가져온 곳 :

블로그 >모 세(Moses)

|

글쓴이 : 모 세(Moses)|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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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작은 자가 큰 자니라(눅 9:46-48)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이름을 내고 자신을 높이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누가 큰 자인지 다투는 제자들에게 어린아이 하나를 세우시고 가장 작은 자

 

가 오히려 큰 자라고 하는 새로운 하늘나라의 교훈을 주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자신을 낮추는 겸손에서 얻어지는 명예를 구할 것이지 남을 짓누르고 쟁

 

취하는 탐욕적인 명예를 구하지 말라고 교훈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죄악 가운데서 교만만큼 물리치기 어려운 죄도 없습니다.

 

교만은 너무나 미묘하게 작용을 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마음속으로 스며

 

들어 자신을 붕괴시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천사 중 가장 아름다운 루시퍼가 사단

 

이 된 것도 바로 이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높이는 천사였으나 교만한 마음으로 자기 위치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하나님께 심판을 받아 구덩이의 맨 밑으로 빠지게 된 것입니다.

 

이에 반해 겸손의 본이 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죽기까지 낮아

 

지심으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올리우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믿음의 분량과 분수는 모두 다릅니다. 그런데 교활한

 

마귀는 사람들을 부추겨서 자신의 분수와 능력의 한계를 벗어나게 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조그만 부와 명예와 지식과 권세를 가지게 되면 스스로 교만해져서 자

 

기보다 낮은 자들을 업신여기고 무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칫하면 마귀가 파놓은 이러한 교만의 함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하나

 

님의 절대 주권을 무시하고 믿음의 분수를 뛰어넘어 탐욕을 부리기도 하고, 이기적인

 

마음으로 남의 인격과 권리를 무시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런 잘못을 범했다면 즉시 돌이켜 하나님께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고 그리스도를 본받아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는 대적하시지만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시고 때가 되면

 

높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나보다 남을 높여주고 낫게 여길 줄 아는 겸손한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

 

습니다.

 

※ 물처럼 사는것이 현명한 삶이 랍니다 ※

                                       

  음악

         

               

 

 

 

노자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최상의 방법은 물처럼 사는 것이라고 역설하였다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겸손하고 부드러운 표정으로

 

 

 

 

 

 

흐르는 물 그 물의 진리를 배우라는 것이다

 

 

 

 

 

 

 

 

 

 

 

첫째, 물은 유연하다.

 

 

 

 

물은 네모진 ...곳에 담으면 네모진 모양이 되고

 

 

 

 

 

 

 

세모진

 

 

 

 

그릇에 담으면 세모진 모양이 된다

 

 

 

 

이처럼 물은 어느 상황에서나

 

 

 

 

본질을 변치 않으면서 순응한다

 

 

 

 

 

 

 

 

 

 

째, 물은 무서

 

 

 

 

 

운 힘을 갖고 있다.

 

 

 

 

물은 평상시에는 ...

 

 

 

 

 

이진 곳 을 따흐르며

 

 

 

 

벼 이삭을 키우고 목마른 사슴의 갈증을 풀어준다

 

 

 

 

 

 

그러나  한번 용트림하면

 

 

 

 

 

 

바위를 부수고 산을 무너뜨린다

 

 

 

 

 

         셋 째,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

 

 

 

 

 

 

물은 항상 낮은 곳으로만 흐른다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흐르다가 물이

 

 

 

 

 

 

                                마침내 도달하는 곳은 드넓은 바다이다

           

 

 

 

사람도 ...

 

 

 

 

이 물과 같이 모나지 않고 유연하게

 

 

 

 

다양한 사람을 너그럽게 포용하고

 

 

 

                             

정의 앞에 주저하지 말고 용기 있게 대처하며

 

 

 

 

 

 

 

                                벼 가 고개를.. 숙이는 것처럼 겸손 하게

 

 

 

                                       

 

 

자기 자신을 낮추는 현명한 삶을 살아야 한다...

 

 

 

 

 

 

 

스크랩] 조사 (목사님을 보내 드리면서)|〃‥‥‥ ▣추도,장례▣

백합 | 조회 11 |추천 0 |2009.05.30. 16:10 http://cafe.daum.net/pjungkh/MHAV/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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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弔辭)

야곱이 바로에게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130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짧고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라고 했는데, 목사님은 70도 못사셨으면서도 어찌 그리 험악한 세월을 사셨습니까?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목사님을 느지막이나마 부르셔서, 배우고 훈련 받게 하시고, 필요하셔서, 황매산 기슭의 쓰러져 가는 작은 산골 교회로 보내셨습니다.

14년 시무하시는 동안 어려움도 많고 고생도 되셨지만, 교회를 교회답게 세우시는데, 온 열정을 다하셨고, 복음을 전하며, 성도들을 돌보시고, 마을 주민들을 섬기는 일에 온 정성을 다하여 힘쓰는 가운데, 그렇게 기도하며 바라시던 새 성전도 아름답고 아담하게 건축 하시고, 이제는 사택도 지을 수 있게 되었다고 기뻐하셨는데, 편안한 좋은 사택에서 살아 보지도 못하시고, 왜 그리 바쁘게 가셨습니까?

나는 건강하여 102살까지도 살 수 있다고 하시더니, 그때까지 사시면서 더 많은 일들을 이루시고, 그렇게 천천히 가셔도 되는데, 무엇이 그리 바쁘셨습니까?

조금은 쉬엄쉬엄 하시면서, 더 오래 일하셔도 되는데, 왜 그렇게 힘들게 하시다가 쓰러지셨습니까?

천국이 그렇게도 좋고, 빨리 가고 싶으셨습니까?

형님 같은 목사님, 동향 사람이라고 그렇게 관심을 가지시고 아껴 주시고 사랑해 주시더니, 이제는 그 인자하신 얼굴을 육신으로는 다시 볼 수 없게 되었으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링거를 같이 꽂고 나란히 누워, 오순도순 정을 나누던 그 시간들이 새삼 생각나며 그리워집니다.

제가 수술을 받고 병원에 누워 있을 때 목사님께서는 황매교회 성도님들과 함께 그렇게도 눈물로 간절히 기도하시더니, 정작 목사님이 어찌 먼저 가셨습니까? 어찌 그리 갑자기 쓰러지셨습니까? 사모님과 자녀들을 두고 어찌 그리 빨리 가셨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또 그렇게 쉽게도 다시 일어나던데, 목사님은 다시 일어나기가 그렇게 힘이 드셨습니까? 그렇게도 지치셨습니까?

그러나 언제까지 이렇게 슬퍼하며 안타까와 할 수만은 없겠지요? 지금은 새벽마다 그렇게도 즐겨 부르시던 찬송을, 천국에서 마음껏 부르며 기뻐하시겠지요?

우리에게 믿음이 없었다면 어떻게 이 모든 슬픔과 아픔을 이겨낼 수 있겠습니까?

우리에게 천국의 소망과 부활의 신앙이 있기에, 우리는 슬픔 중에도 천국을 바라보며 다시 일어설 수 있겠습니다. 천국에서 다시 뵈올 수 있음을 바라보며 위로를 받습니다.

숨을 거두신 후, 중환자실에서 그렇게 잠든 것 같이 편안하게 누워 계시던 그 모습이 자꾸 떠오릅니다. 세상에서의 남은 일들은 우리에게 맡기시고, 이제는 주님 품에서 편안히 쉬옵소서.

우리 언젠가 다 천국에서 기쁜 얼굴로 만날 때까지 평안히 잠드소서.

주후 2009년 5월 25일, 교제 김병률 목사

출처 : 천국 네비게이션
글쓴이 : gemi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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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추도예배 순서와 설교 [스크랩]
추도 예배 순서


개식사 ---(통235)200,(통293)480.(통433)383. (통434)384. (통545)493, (통539)488. (통541)489. (통544)492,-----집례자
예배의부름---시90:1-10-----------------------맡은이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슬픔과 절망의 어두운 세상속에서도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저희 사랑하는 부모님을 하나님의 나라로 불러 가신 날이오라 이 날을 기념하며 이곳에 모여 주님께 예배하오니 긍휼히 여기시고 주님의 위로와 하늘의 평강으로 채워 주시옵소서.
사랑의 하나님, 그 동안 저희들의 모든 허물과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육신의 부모님께, 형제들에게 잘못한 것이 많았음을 고백하오니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로 하여금 세상의 모든 어려운 일과 현재의 형편만 생각하여 슬퍼하지 말게 하시고, 하늘의 영원한 소망을 생각하며 평안한 마음을 갖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모든 가족이 주 앞에 돌아와서 믿음을 갖게 하시고, 굳센 신앙으로 살게 하옵소서. 이 시간 모든 절차를 성령께서 친히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을 기도드립니다. 아멘

신앙고백------다같이
찬 송-------(통94) 96, )----------다같이
성경봉독---잠언 14;12/16:25---------맡은이
말 씀----어디로가고 있습니까?------- 맡은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족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 땅에서 먼저 사시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신 부모님을 추모하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뿌리가 보이는 식물의 근원이 되듯이 오늘 우리가 있는 것은 이 세상을 먼저 살다 가신 선조들 , 부모님들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역경과 환경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살아가셨던 부모님들의 정신과 뜻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족들의 핏속에 흘러 오늘의 우리가 있게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류의 조상 아담에게 말씀하시길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찌니라” 하셨습니다. 한번 죽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성경은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 하였습니다. 아침에 호수를 보면 자욱하게 안개가 덮여 있습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지요. 그러나 태양이 떠오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집니다. 우리 인생이 바로 이런 안개와 같다는 것입니다. 당장의 물질에 눈이 어두워 장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단 몇 달도 내다보지 못하여 죽어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는 현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4:14)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진짜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죽은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고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을 이 땅에서 준비하는 자가 복된 자입니다. 신문광고나 텔레비전 광고를 보면, “미래를 대비하라” “노후를 준비하라”는 광고가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노후는 준비하면서 죽음은 준비하지 않는 다는 사실입니다. well-being’(잘 살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well-deaing’(잘 죽기)입니다. 죽음을 준비한 사람은 절대로 불안하지 않습니다. 죽음을 준비한 사람은 어떤 상황이 와도 당당합니다. 생명이 있다는 것은 죽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죽음은 정해진 이치입니다. "우리는 필경 죽으리니 땅에 쏟아진 물을 다시 모으지 못함 같을 것이오나"(삼하 14:14).

그러나 죽음은 끝이 아니기에 준비해야 합니다. 인생은 선택과 준비의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현재가 달라집니다. 어떻게 준비를 하느냐에 따라서 미래가 바뀝니다.

▶이태리 밀라노 대성당에는 문이 셋이 있는데, 첫째 문은 아치로 되어 있는데 “모든 즐거움은 잠깐이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고, 둘째 문은 십자가형으로 되어 있는데 “모든 고통도 잠깐이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고, 셋째 문에는 “오직 중요한 것은 영원한 것이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참으로 인생을 가장 짧게 정리한 글이라 생각합니다. 즐거움도 잠깐, 고통도 잠깐인데 중요한 것은 영원한 것입니다. 인간은 영원한 존재이므로 영생을 얻는 것과 영원한 천국을 준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고 또 가장 시급한 문제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일의 영원한 천국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바로 하늘에 소망을 갖는 것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한복음 14:1-3)” 이런 공허와 절망의 순간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하늘 소망을 주시며 용기와 격려를 해 주십니다 .

첫째로 근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한치 앞을 모르는 우리 현대인들은 늘 근심과 염려 불안에 휩싸여 삽니다. 그러나 근심으로 변화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심신을 약하게 만듭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헛된 염려와 근심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고 있습니까? 특히 인류의 가장 큰 근심은 바로 죽음에 대한 문제입니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들어온 이 죽음은 창조 이래 인간을 괴롭혀 온 가장 큰 공포입니다. 헤어 나올 수없는 죽음의 두려움 속에서 우리는 때때로 분주한 일과 방종한 쾌락으로 죽음을 잊어보려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근원적 해결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죽음도 두려워하거나 근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인간의 생명과 죽음까지도 주관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시려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영생의 소망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믿고 담대한 자신감으로 세상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예수님을 신뢰하라고 하십니다. - 두려움의 반대말이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우리는 두려움과 근심에 빠지게 됩니다. 예수님은 염려하는 제자들에게“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말씀하십니다. 사랑의 주님을,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는 그 좋으신 예수님을 끝까지 신뢰하라고 하십니다. 그 믿음이 우리의 두려움을 사라지게 하고 기쁨과 평안이 넘치는 삶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살아 호흡하고 있을 때에도 또 죽음을 맞이할 때에도, 죽음 이후에도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지켜 동행해 주십니다. 이 사실을 믿고 신뢰할 때 우리의 삶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기적이 창조되고, 운명이 변화됩니다. 세상을 이기고 변화시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만이 우리를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으로 인도해 줍니다. 우리 모두 주님을 신뢰함으로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셋째로, 하늘 소망을 가지라고 하십니다. - 죽음 앞에 너무나 초라하고 연약한 인간의 모습속에서 우리는 때때로 공허해지고 무력해 집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도 담대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도에게 죽음의 권세를 넘어서는 하늘나라의 소망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영생의 소망을 주시기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셨습니다.
또한 죽음을 이기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모든 믿는 사람들의 부활의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이로 인해 성도는 죽음 앞에서도 담대할 수 있고 기쁨의 찬양을 드리며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다. 영원한 생명을 향한 새로운 출발이다. 너희는 먼 훗날 고통과 눈물이 없고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나와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라는 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하시는 이 말씀을 믿고 우리 가족모두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번 추도예배를 통하여 우리 부모님들의 귀한 정신을 잘 되새기고 앞으로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하겠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신뢰함으로 그동안 우리를 괴롭혔던 근심과 걱정과 불안을 떨쳐버리시길 바랍니다. 더 나아가 하늘 소망을 가지고 승리의 삶을 살아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주신 말씀 붙잡고 순종하는 우리 모든 가족들 위에 하나님의 평강이 언제나 함께 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기도 ------------------ 맡은이
찬송 -- (통542)490,------맡은이

추모순서
①고인의 약력보고 ②추모사 ③유언이나 유서나 유물소개
시조는 덕명(德明)1世 로부터-24世 심우(心佑)할아버지께서 구만리로 낙향하시여 구호손(九湖孫)으로 25世 성(0性)26世 석(錫0)27世 영(0永)28世 병(秉0)29世 용(0容)30世 재(栽0)31世 호(0鎬)32世 순(淳0) 자손이다,

할아버지는 000字로 88세손이며 음력 0000년 00월 00일(양력 0000년0월 0일)0세에 소천하셨다. 할머니는 0字 0字 0字로 000씨 시며 음력0000년 0월0일(양력 0000년0월00일)00세에 소천 하셨다.
살아생전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에는00000을 경영하시다가 연세가 많으신 뒤부터는 000000000를 운영 하셨으며 예수님 믿고 세례를 받으신 뒤 소천하셨으며, 현재 00000000 0000 묘지가 있다. 할머니는 아빠 형제들인00남매를 훌륭하게 기르시고 지병(000)으로 조금 일찍(00세)이 소천하셨는데 병상에서 예수님을 영접하셨고 묘지는 고향 마을인 00000000리 선산에 있다.
** 잠깐 눈을 감고 조상님들에 대해 감사의 생각을 하도록 합니다.

찬송 --------(통543)491 -------맡은이
축도 ------------------------맡은이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들은 눈앞에 보이는 것만 보고 미래를 볼 줄 모르는 어리석은 인간입니다. 그러나 영원한 나라가 있음을 믿게 하여 주시고,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영원한 소망을 두고 항상 이 세상 속에서 어떤 어려움을 만나도 극복할 수 있는 믿음의 용기를 주시옵소서. 우리들이 흩어져 살더라도 믿음으로 하나되게 하시고, 주의 은혜와 축복 속에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아멘.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와 하나님아버지의 지극하신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교통하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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